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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미의 재미있는 상품정보 본문
스냅드래곤 810 시절에 발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삼성과 애플을 제외한 모든 제조사들이 죽을 쑤는 바람에 스마트폰 교체를 미루거나 포기했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포기했다가 별로 적당하지 않은 때에 스마트폰이 박살나준 덕분에 울며 겨자먹기로 바꾸었다. 뭐가 되었든 요지는, 스냅드래곤 810이 망작에 가까웠으니 820의 시대에 대해 사람들이 기대가 클것이라는 이야기. 왜 이 문단을 썼는지 모르겠는데, 주제랑은 쥐콩만큼도 관계가 없는 내용이 화두가 되었다.
샤오미의 Mi5가 조만간 나온단다. 샤오미는 가격대비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특허를 도둑질하는 양아치 기업 소리도 듣곤 한다. 기업들간의 지적재산권 침해같은 비도덕은 관심 없으니 제품만 싸고 좋으면 장땡이라는 소비자도 있는가 하면, 결과적으로는 시장을 말라죽게 만드는 도둑질이라며 불매를 벌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어차피 이놈 저놈 안가리고 서로들 베껴대는 것이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도긴개긴인것 같고 그것 말고도 거대기업의 비도덕성을 지적할 껀덕지는 워낙 차고 넘치니 저 정도면 그냥 신경 안쓰는 쪽을 택했다. 당장 1~2년 안에 샤오미의 도둑질이 모든 시장을 초토화시키는 바람에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이야기가 매번 그렇듯 옆길로 샜는데, Mi5가 나왔고 그거 상품정보를 좀 보다가 신기한 구석이 있어서 이야기 하려고 가져왔다.
△ 카메라에 대한 특장점 소개 부분
4축 광학식 손떨림방지라든가, 1,600만 화소 센서 같은 것들은 특이할 것이 없다. 4K라는 것도 요즘엔 소비자 가전 시장에 많이 나와있는 단어이고 사파이어 렌즈를 썼다는 것도 사파이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니 저런 단어로 장점을 내세우는 일은 신기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빨간 네모안에서 뭔가 괴상한 단어를 보았다. Crosstalk suppression. 이 단어가 왜 괴상하게 여겨지는지 알기 위해서는 크로스토크가 무엇인지 부터 알아야 한다.
△ 크로스토크를 설명한 이미지 중 제일 색이 예뻐서 가져옴-_-
말이 거창하지만 사실은 별것 아니다. 전기가 흐르는 모든 전선은 주변에 전기장이나 자기장을 만드는데, 그러다보니 주변에 있는 다른 전선에 흐르는 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게 '크로스토크'의 기본적인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숱한 전자기기들에서 크로스토크는 종종 생겨난다. 다만 그게 거의 영향이 없으니까 전자제품을 쓰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알아차릴 일이 없다.
그러나 디스플레이, 그러니까 TV나 모니터 쪽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카메라에서도 크게 문제가 된다. 원치 않게 전기가 흘러서 발생하는 신호 때문에 눈에 보이는 화면이나 사진이 직접 왜곡되기 때문이다. 화면이 흐릿하게 보이는 경우가 가장 흔하고 사진이나 화면에 열 십자 모양의 무늬가 반복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위의 Crosstalk suppression은 그런 크로스토크 현상을 카메라 센서에서 억제해 두었다는 뜻이다.
내가 디스플레이쪽 전공을 하고 있으면서도 3학년 과목을 수강할때야 크로스토크와 관계된 이야기가 나왔는데, 관련 전공자 3~4학년 수준의 내용이 담긴 글귀를 상품정보에 써놨다는게 내 눈에는 무지하게 신선했다. 다른 회사들이야 그럴 수도 있다. 스펙덕후들을 열광시키며 등장한 Oppo라든가, 매년 꾸준히 당대 최강의 기술을 아낌없이 때려박은 스마트폰을 내놓는 삼성 같은 회사들이 그랬다면 그나마 이해가 갔을텐데, 샤오미는 그간 꾸준하게 애플을 베껴가며 장사해왔기 때문에 더 의아한 노릇이다. 이쯤에서 애플이 카메라를 어떻게 홍보하는지 볼작시면...
애플의 홍보문구에서 제일 '공돌이스러운' 단어는 1200만 화소 정도일 것이다. 그나마도 15년 넘게 디지털 카메라들이 화소경쟁을 해왔던 덕에 화소 같은 단어가 보통의 소비자들에게 낮설 이유는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애플은 원래 딱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만 간략하게 이야기 하는 방법을 좋아했고 그 방식이 소비자들에게 먹혀 들어가서 잘 팔려나갔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감성드립이란 욕도 같이 얻어먹게 되었다. 나처럼 카탈로그나 스펙을 찾아보는게 취미이자 특기인 사람에게는 영 불편하고 와닿지 않는 홍보 방식이지만, 나같은 미친놈은 세상에서 1%도 되지 않으니 보통 사람들에겐 저게 옳은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옳기 때문에 많은 제조사에서 애플의 간결하고 감성적인 문구를 따라하고 있다. 1
△ 애플의 주적이라 할 수 있는 구글마저도 감성마케팅 대열에 합류하는 상황이다.
뭐 아무튼, 애플의 방식이 옳고 그르고는 이 글의 주제와 별 관계가 없으니 넘어가고 샤오미가 꽤나 어려운 단어를 썼다는게 놀랍다. 도대체 나는 상품정보 보다가 크로스토크 같은 업계 단어가 튀어나올 것이라곤 상상조차도 해본 적이 없다. 수업시간에 머리 쥐어 뜯으면서 배웠던 개념이 사람들 보는 상품정보 이미지에 떡하니 박혀있는 것을 보게 될 줄이야.
△ 센서 모델명을 외우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일단 난 못외웠다.
한술 더 떠서 이젠 아예 카메라 센서 모듈의 모델명까지 박아놨다. 보다가 어이없어서 피식 해버린 지점. 이쯤 되면 일반 소비자한테 팔겠다고 만든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깨알같이, 자신이 열심히 베끼던 애플의 아이폰을 살짝 디스하는 사진도 걸어두었다.
△ 꼴랑 4.7인치 화면 달아놓고 143g은 확실히 무거운게 맞다.
엑스페리아 Z3C는 4.6인치 화면에 2600mAh 내장형 배터리 달아놓고 129그램이었고, 갤럭시 알파는 4.6인치 화면에 1800mAh 교체식 배터리 달고도 115g 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폰은 4.7인치에 143그램이나 나간다. 샤오미의 Mi5는 5.15인치에 3000mAh 배터리를 달아놓고도 129g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건 정말 대단하다. 무게를 줄이면서 튼튼하게 만든다는건 정말 쉽지 않다. 더더군다나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외장을 만든 것도 아니고 알루미늄으로 프레임을 짜 넣은 물건이다. 3년전의 넥서스 5는 4.99인치 화면과 플라스틱 하우징에 2300mAh 내장형 배터리를 달고도 129g이었다.
그리 반갑지 않은 타이밍에 폰을 바꾸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지만, 원래대로라면 이 폰도 당연히 내 새 스마트폰 후보에 들어갈만한 물건이었다. 스펙표를 살펴보다 보니 아쉬움이 더 크다 젠장. 조금만 더 버텨주지 그랬니 내 엑스페리아....
- 제품의 사양을 가르쳐주면 그걸로 뭘 할수 있을 지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면 되는데 얘네는 내가 가르쳐 달라는건 안가르쳐주고 내가 뭘할지 정해주고 있다. 나는 누가 쓸데없이 내 행동에 어시스트를 넣는걸 끔찍히 싫어한다. 그게 사람이든, 기계든. [본문으로]